알고보면 쓸모있는 한국사!
오늘은 강감찬에 대해서 파헤쳐 보도록 하겠습니다!
1. 강감찬은 누구인가?
강감찬은 고려의 문신으로써 고려 현종에게 큰 영향을 준 재상이었으며, 거란의 3차침입을 격퇴한 장군입니다. 강감찬은 현재의 서울시 관악구에서 태어났으며, 어릴적 이름은 은천이었습니다.
고려사에 적혀있는 기록에 따르면 젊은 시절부터 학문을 좋아하였으며, 기발한 지략이 많았다고 합니다. 그래서 성종 2년때 장원으로 급제하였는데, 그 때의 나이가 36세였으며, 늦게 관직을 시작하였습니다.
그 후 에는 고려사에 등장하지 않습니다. 그 이후 현종이 즉위하고 나서 강감찬은 출세길이 트였는데, 거란이 40만명으로 침공을 시작하자, 강감찬은 항복을 반대하고, 홀로 몽진을 주장하였습니다.
그 이후에는 거란의 요 성종을 설득하여 물러가게 하였으며, 이후에는 문하시중까지 올라가 승승장구 하였습니다.
2. 거란의 3차침공, 그리고 귀주대첩!!
그 이후에 거란은 고려 현종이 입조하지 않은 것과 강동 6주를 돌려주지 않은 것을 구실로하여 10만대군으로 고려를 침공하였습니다.
이 때, 강감찬은 74세의 고령의 나이에도 불구하고 출정을 하였습니다. 그리고 부원수인 강민첨과 함께 20만명을 이끌고 나가서 곳곳에서 거란을 격파하였습니다.
각 종 계략을 바탕으로 거란을 크게 무찔렀으며, 거란군이 철수를 하는 와중에 귀주의 평야에서 거란군과 전면전을 치뤘습니다. 그 때 거란군은 패배하였으며, 압록강을 건너서 탈주한 수가 겨우 수천이라고 합니다.
이 전투를 우리는 귀주대첩이라고 부릅니다.
대단하도다. 하늘이 이 백성을 사랑함이여. 국가에 장차 화란이나 패망이 올 때에는 반드시 세상에 이름난 현인을 낳아 국가의 화란이나 패망을 위하여 대비하는 것이다. 기유(1009)년, 경술(1010)년에 역신이 난을 꾸미고 강한 적국이 와서 침략하여 내부의 분쟁과 외적의 화란으로 국운이 위급하게 되었으니 이때에 강공(姜公)이 없었더라면 어떻게 나라를 다스렸을지 알 수 없는 일이다. 공이 조정에 들어와서는 국가의 모의에 참여하고 밖에 나가서는 정벌을 맡아, 화란을 평정하며 삼한을 회복하여 종사와 생민이 길이 힘입게 되었으니, 하늘이 낳아서 이 백성의 화란과 패망을 대비한 이가 아니라면 그 누가 능히 이에 참여하리오. 아아, 성대하도다.
《고려사절요》 현종 22년, <강감찬 졸기>의 사관 논평
3. 귀주대첩 이후의 강감찬은???!
전쟁이 끝난 뒤 강감찬은 나이가 많다는 이유로 사직을 요청하였으나, 현종은 강감찬에게 지팡이를 선물로 주고4일에 1번만 출근하고 나머지는 몸을 보살피라고 하였답니다.
그 이후에 강감찬은 다시한번 (현종11년)사직을 요청하였으며, 현종은 사직을 수리하였다고 합니다. 하지만 그 이후에 정계를 완전히 떠나지는 않아서, 개경의 성곽건설을 요청하는 등 중요한 역할을 하였습니다.
강감찬은 84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을 때, 조회를 3일단 정지하고 백관에게 장례에 참석하도록 하였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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