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고보면 쓸모있는 한국사! 이순신 장군님을 파헤쳐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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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고보면 쓸모있는 한국사

알고보면 쓸모있는 한국사! 이순신 장군님을 파헤쳐보자!

by 소고래 2022. 12.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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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고보면 쓸모있는 한국사! 이순신 장군님 편입니다! 

1. 이순신이라는 인물에 대해 알아보자! 

이순신은 조선의 무신으로, 임진왜란 및 정유재란일 때 엄청난 활약을 한 조선 수군을 통솔했던 장군입니다.
이순신은 원칙이 분명한 인물로써, 그 시절 이순신을 질시하는 인물들이 많았던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또한, 임진왜란 직전에 장수로 발탁되어 전라좌수영에 임명되었으며, 전쟁의 분위기를 느껴, 거기에 대비를 하였습니다. 그리고 전쟁이 일어나자, 이순신 특유의 전략 및 전술적 능력을 바탕으로 계속 승리하였습니다. 



또한, 이순신의 연전연승은 나라를 보전할 수 있는 매개체가 되었습니다. 하지만, 그를 질시하는 사람들의 견제 덕분에, 이순신은 삼도수군통제사에서 물러났으며, 백의종군을 하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곧 복직을 하였으며, 일본군에 맞서 싸우다 노량에서 안타깝게도 전사하였습니다.



2. 이순신의 유년시절은 어땠을까?


이순신은 아버지 이정과 어머니 변수림의 딸사이에서 태어났습니다. 조부인 이백록이 기묘사화에 희생된 이후 집안이 급격하게 기울기 시작하였으며, 이순신의 아버지인 이정은 관직에 큰 관심을 가지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이순신을 마냥 키우지는 않았습니다. 



집안 자체가 굉장히 엄격하였고, 학문적인 부분 또한 굉장히 정성을 다해 가르쳤습니다. 특히 어머님은 아들들에관한 가정교육에 더욱 철저히 했습니다. 이순신의 정의감 넘치고, 원칙이 분명한 성격은 이런 가정환경 덕분에 나타났다고도 할 수 있습니다. 


 


3. 이순신 장군님의 일대기


이순신은 1572년에 무과에 응하였으나 말에서 떨어지면서 불합격을 받았으며. 1576년에 다시한번 시험을 응시하여 합격하였습니다. 그 후 녹둔도에 부임하였을 때 오랑캐의 침입에 대응하지 못할못할 것 예상하여 대피하였으며, 이로 인해 1차 백의 종군을 하게 되었습니다. 또한, 1589년에는 이산해, 유홍, 유성룡의 추천을 받아, 승진에 속도가 붙게 되어, 1591년에 전라좌도수군절도사가 되었습니다. 이것은 파격적인 것으로써, 당시에 질시하는 사람들이 많았습니다.
이순신은 이시기에 부임하자마자, 전쟁에 대비하는 준비를 착실히 진행하였으며, 전쟁 하루 전에도 총통 발사 훈련을 하였다고 합니다.



또한, 1592년도 5월4일 이순신의 첫번째 출전을 하였으며, 5월 7일에 옥포 앞바다에서 승리를 거머쥐었습니다. 또한 합포와 적진포에서도 승리를 하는 등 많은 전과를 세우기 시작하였습니다. 
또한, 적의 함선 10척 이상이 사천에 정박해있다는 소식을 들은 후 출진을 하여 당시, 썰물이었던 조류가 밀물로 바뀔 때, 진입하지 못했던 판옥선과 함께 진입하여 거북선과 함께 일본군을 격퇴할 수 있었습니다. 이게 바로 사천해전입니다. 


일본군은 이순신에게 당했다는 연이은 소식들을 듣고,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상확을 역전하기위해 출진하였습니다. 이에 따라 와키자카 야스하루, 구키 요시타카, 가토 요시아키 등 이 참여하는 등 대규모 해전을 준비했습니다. 



조선군 진영에서는 이순신을 비롯하여 이억기, 원균등이 합세하였습니다. 이순신은 지형이 좁은 견내량을 대신하여 한산도를 전장으로 택해, 한산도 앞바다로 적군들을 유인한 뒤 학익진을 펼쳐서 적군들을 격퇴하였습니다. 이것이 바로 한산도 대첩입니다. 


이런 여러가지 해전들을 연달아 승리하였으며 일본군의 입에서 이순신이라는 말이 나오기 시작하였습니다. 또한 시간이 지나고, 명과 일본이 강화교섭에 들어가면서 전쟁이 소강상태로 들어가기 시작했습니다. 하지만, 명과 일본의 교섭이 결렬되고, 1597년도에 다시 조선을 침입하기 시작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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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97년 7월 이순신의 삼군수군통제사의 자리를 물려받은 원균은 칠전량에서 대패하였고, 다시 이순신에게 자리를 내주게 되었습니다. 이때 남은 조선수군은 약 120명, 함대는 12척에 불과하였습니다. 조정에서는 수군의 힘이 미비하니, 육군과 합류하여 육지에서 싸우라고 지시를 내렸습니다.
이때 이순신의 가장 유명한 말이 나옵니다. 
‘아직도 전선이 12척이나 있으니 있는 힘을 다해 싸우면 오히려 할 수 있는 일이 있을 것입니다.’
어려운 전투를 치루는 이순신은 수군을 이끌고 명량에서의 전투에 임하지만, 조선군들은 겁을 먹어 이순신의 말을 따르지 않고 먼 거리에서 이순신이 싸우는 것을 지켜보다가, 이순신이 장렬히 싸우니 추후에 모든 수군이 돌격하여 전쟁에서 승리를 할 수 있었습니다.


이순신은, 노량해전에서 조명연합 수군의 함선과 일본군의 함선이 뒤섞여 혼란한 상황일 때 명의장수인 진린을 구하려다 이순신이 탄환에 맞아 전사하였습니다. 진린은 배위에서 쓰러질 정도로 슬퍼했다고 합니다. 이순신은 전사하는 그 순간까지 ‘내가 죽었다는 말을 삼가라’라고 말하며 조용히 눈을 감았다고 합니다. 


이로써 오늘 우리나라를 빛낸 위대한 인물 중 한 분인 이순신 장군님에 대해 알아보았습니다. 정말 대단하시다는 말밖에 나오지 않는 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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