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고보면 쓸모있는 한국사! 오늘은 일제강점기의 시인인 이육사에 대해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1. 이육사는 누구일까?
이육사는 일제강점기의 저항시인으로 우리에게 유명합니다.
그는 어린시절인 대한 제국시기에 조부인 이중직에게서 소학 등 한학을 공부하였으며, 그 이후에는 보문의숙이라는 학교에서 수학하기 시작하였답니다. 이런 어린시절의 경험으로 이육사는 이후 창작활동에서 한학을 배운 흔적이 보입니다. 졸업 후에는 사립 백학학원의 교원으로 약 9개월 정도 근무를 하였으며, 일본 및 중국으로 유학을 가서 공부를 하였으나 중퇴하였습니다.
여기서, 우리가 흔히 알고있는 ‘이육사’라는 이름은, 1927년 장진홍의 조선은행 대구지점 폭파 사건에 연루되어 3년간 옥고를 치룬적이 있는데 이 때의 수감번호가 264인 것을 따서 호를 ‘육사’라고 지었답니다. 여기서 우리가 잘 알고있는 ‘이육사’가 시작된 것입니다.
출옥 후에는 중외일보 기자로 일을 하였는데 이 때, 이활이라는 이름으로 첫 시인 ‘말’을 조선일보에 발표합니다. 그리고 1933년4월에는 육사라는 필명으로 ‘황혼’이라는 시를 ‘신조선’에 발표하여 시단에 데뷔하였습니다.
신문사 및 잡지사를 다니면서 시 이외에도 논문, 시나리오도 다루었으며, 루쉰의 소설인 ‘고향’을 번역하기도 하였습니다. 하지만, 1934년에 의열단 및 조선 혁명군사정치간부학교의 출신자라는 이유로 경성부 경찰서에 잡혀서 서대문 형무소에 투입되어 고문을 받았으며, 7월에 기소 유예로 풀려날 수 있었답니다.
광야
-이육사-
까마득한 날에
하늘이 처음 열리고
어디 닭 우는 소리 들렸으랴.
모든 산맥들이
바다를 연모(戀慕)해 휘달릴 때도
차마 이 곳을 범(犯)하던 못하였으리라.
끊임없는 광음(光陰)을
부지런한 계절이 피어선 지고
큰 강물이 비로소 길을 열었다.
지금 눈 내리고
매화 향기 홀로 아득하니
내 여기 가난한 노래의 씨를 뿌려라.
다시 천고(千古)의 뒤에
백마 타고 오는 초인(超人)이 있어
이 광야에서 목놓아 부르게 하리라
2. 이육사의 평가
이육사는 독립운동가에 매진하여 옥살이만 17번을 하였으며, 그에 따라 현재는 윤동주와 함께 ‘저항 시인’으로 평가 받게 되었습니다. 실제로도 1943년부터 일제가 한글 사용에 대해 탄압을 해오자 이육사는 한글시만 쓰는 식으로 하여 붓을 놓지 않았고, 일제의 저항 의지를 굽히지 않았습니다.
또한, 그의 시를 전체적으로 평가해보면, 윤동주가 반성, 부끄러움을 주로 다루고 있다면, 이육사의 시는 굴하지 않는 의지 및 남성적인 면을 표출하였다고도 볼 수 있을 것입니다.
이육사의 시의 주제가 명확하다고 하여서 해석이 쉽다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조금 더 심도 있게 들여다 보면 이육사의 시는 상징적인 시어들이 많아서 의미 자체를 해석하기 매우 어렵습니다. 그래서 우스겟 소리고 이육사의 시 앞에서는 자동으로 무릎을 굽혀야 한다는, 말까지 있습니다. 그렇지만 수능에서 윤동주와 함께 가장 많은 시가 나오는 것으로 유명한데, 그 이유는 윤동주와 함께 과거에 친일 행적이 없기 때문입니다.
또한, 일제 강점기를 거친 많은 문인들 중 가장 적극적으로 애국 및 독립운동을 한 인물로 꼽힙니다. 39년동안 옥살이면 17번을 했다는 사실이 그의 애국심과 민족의식을 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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